촛불문화제, 386, 광기..그리고 실망. - 더 이상 촛불집회에 관심갖지 않을것이다
과연 이게 물타기일까.
일단 수업 끝나고 글좀 써보자.
제일 중요한건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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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촛불 문화제에 간건 5월 17일이었다. 그날 나는 학교내의 사회과학 학회에서 광우병 파동 관련 세미나를 맡아서 직접 발제를 했고 세미나가 끝난 후 후배들을 데리고 청계광장의 촛불 문화제에 갔었다. 난 그놈의 사회과학 학회에서 작년엔 부학회장씩이나 맡은 경력이 있지만, 난 사회주의가 최고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거리 집회나 민중의 힘 같은것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예쁜 선배의 꼬임에 넘어가서 학회에 가입한건 아니고, 철저하게 '빨갱이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사나'궁금해서 가입했던 곳이었다. 학회의 정체성에 대해선 다음에 기술하기로 하자.
* 학회를 하면서 나도 이래저래 많은 집회현장을 가봤고 참가도 했었지만, 난 이유야 어떻든 폭력집회를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그런면에서 소위 전경과 그 뒤에있는 정부를 극악무도한 민중의 적으로 규정하고 개인의 감정을 자극해서 공권력과 정면충돌을 하게 만드는 시위 주동자들을 경멸했었다. 그런 사람들은 뻑하면 518이니 프랑스 혁명이니 하며 민중이 무기를 들고 일어서야 세상이 굴러간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그건 집단 광기와 절대 악이 만나서 집단 광기가 보다 선하게 포장된 경우고, 요즘 같이 악이 불분명한 시대엔 되려 그나마 착하지만 멍청한 사람들을 잡아다죽일 가능성이 더 많다.
* 효순이 미선이를 위한 촛불시 위나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시 위엔 참가해보지 못했기에, 그날, 미친소 반대하는 촛불 집회가 나에겐 첫 촛불 집회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접한 촛불 집회의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뜨거웠고 조용했지만 힘이 있었다. 자유발언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정말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자유롭게 발언하고 내려가고 했었다. 내가 간 그날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의 아저씨가, 학생들이, 부모님이, 동생들이, 친구들이 올라와서 자유롭게 의견을 펼쳤고 대부분 따뜻한 격려와 우렁찬 함성으로 지지를 받았다. 아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처음으로 공개된날도 그날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절제를 할 줄 알았고, 무엇이 잘 못인지 알았으며, 누구를 탓해야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청와대로 달려가 대통령 멱살을 잡고 끌어내리는게 아니라,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국민의 뜻을 전달하자는 그런 분위기었던 걸로 기억한다.
* 나중에 들어보니 전경이 배치되어있었다고 했지만, 난 군중들 한가운데 섞여있어서 전경들이 어디있는지 알 수도 없었다. 누구도 촛불 문화제를 막지도 않았고, 누구도 소리지르지 않았으며, 누구도 다치지 않았었다. 9시인가 10시인가, 주최측으로 보이는 사내(이사람이 자유발언대를 진행했었다)가 어쩌고저쩌고 하다가 오늘은 그만 마치겠다고하자 군중들은 자연스레 쓰레기를 치우고 자리를 떴다. 월드컵 때 광화문에서 응원을하고 자연스레 헤어지는 것 처럼 말이다.
* 내가 그날 촛불 문화제에서 본건 희망이었다. 아버지들이, 어머니들이, 아이들이, 학생들이, 청년들이, 정말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가 모일 수 있는 문화제였고, 누구도 부담없이 한번 와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마음에 드는 구호를 외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아버지. 친구와 야자가 끝나고 달려온 고등학생. 레포트를 마치고 온 대학생. 업무를 마치고 온 회사원. 가게문을 닫고 나온 사장님. 그야말로 전국민이 모였었다. 이제 규모가 조금만 커지고, 적당한 선전만 더해진다면 전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기에 무리가 없는 그런 문화제가 될 수 있을것 같았다.
* 현대 한국 민중운동의 가장 큰 단점은 당최 시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게 조중동의 색깔론에 휘말려서 그렇든, 국민이 다리가 넷 달리고 왈왈거리며 짖어대는 포유동물의 후손이라서 그렇든지간에, 사회분위기는 이미 '시위, 집회, 운동' 같은 단어들로부터 등을 돌렸었다. 거기엔 여러가지 앞서말한 이유가 있겠지만, 집회 자체의 과격함도 어느정도 기여를 하고 있음을 무시할 순 없다.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의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서' 라고 하지만, 왜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화염병을 던지고 죽창으로 찌르고 보도블럭을 부숴야하는가? 난 참 궁금했다. 내가 아는 의견 전달의 방법은 '시각과 청각' 두가지 방법이며 구체적으론 '문자, 그림, 음성, 행동'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의사소통 방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배웠다. 그럼 기존의 집회에대해 일반적인 해석을 해보면 화염병을 던지는 이유는 '나는 불과 휘발유를 좋아합니다.' 라는 의견의 전달이고 죽창으로 찌르는 행위는 '나는 대나무공예의 문화재 지정을 찬성합니다'라는 의견의 표출인가? 보도블럭을 던지는 이유는 '매년 구청의 이월금을 낭비하기위한 보도블럭교체를 규탄한다'라는 의미의 상징적 표현이고?
* 촛불 문화제엔 그런 행위들이 없었다. 오직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고, 표현하고, 전달했다. 공감하고, 이해하고, 의논했으며, 대중에게 알렸다. 난 거기서 희망을 느꼈다. 촛불 문화제엔 국민의 순수한 의견이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문화제는 지극히 합법적이었다. 집시법(이라고 쓰고 집회금지법 이라고 읽는다)의 '일몰 이후 집회는 불법'이라는 규정을 피하기 위해 촛불 문화제는 집회가 아닌 문화제였고, 가두행진이나 시위가 아니면서도 '의견전달'이라는 목적은 훌륭히 수행했었다. 조금만 더 하면 전국민의 의견을 대표하는 문화제가 될 수도 있었다.
* 그러나 촛불 문화제는 변했다. 첫 시민이 청계천 광장에서 엉덩이를 들고 청와대를 향해 걸어나가는 순간, 누군가가 일어서 '청와대로 갑시다!' 라고 말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문화제가 아니다. 그건 우리가 두려워하는 시위였고, 집회였고, 데모였고, 운동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촛불 문화제는 그것이 가진 단 하나의 장점, 기존의 집회와는 다른 단 하나의 차이점을 잃어버렸다.
희망은 사라졌다.
더 이상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올 수 없었다. 아이가 다치면 안되니까. 대학에 가야 하는 고등학생들은, 이제 촛불 집회에 나오지 못한다. 경찰에 잡혀가면 안되니까. 내일 출근해야 하는 회사원들은 더 이상 촛불 집회에 참가 할 수 없게 되었다.
* 그 과정을 지켜보던 경찰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범법자가 된 참가자들을 해산시켰다. 촛불 문화제는 문화제이기에, 공권력을 동원해 해산 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일몰 이후의 행진, 가두시위, 촛불 집회는 엄연한 불법이다. 지금까지 이땅에서 일어난 수 많은 불법 시위들과 하등의 차이점이 없다. 당연히, 기존의 시위를 진압하는 방식으로, 그들은 진압되었다.
* 누군가는 말한다. 이번 시위는 다르다고. 이번엔 예순살 할머님이 나오셨고, 다섯살 짜리 아이가 나왔고, 중고등학생들이 나왔다고.
웃기지 마라.
FTA 반대 시위땐 여든살 드신 할아버지도 나오셨었다. 광우병 반대하러 나오신 예순살 할머님은 물 한방울 맞으면 안되고 FTA 반대하러 전라도에서 올라오신 여든살 할아버님은 당연히 곤봉에 두드려맞고 잡혀가도 되는거였나? 두분 다 똑같은 시위대고 똑같은 범법자들이다. 경찰을 그걸 진압한거다. 경찰의 존재목적에 맞는 일이다. 거기에 빌미를 제공한건, 먼저 행동을 시작한 시위대였다.
* 여기서 한가지 문제는, 과연 누가 맨 처음 가두행진을 주장했느냐이다. 촛불 문화제를 주체하고 있는 사람들(자유발언대에서 양복입고 사회를 보던 사람들)은 분명히 일몰 후에 집회가 범죄이며 만약 그렇게 될 경우 경찰이 그들을 진압하리라는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 그걸 알면서도 그들을 거리로 내몬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누구의 말 처럼 프락치들일까?
* 차라리 프락치에 의한 선동설을 믿고싶다. 만약 그게 시민의 자발적인 행동이었다면, 그리고 누구도 그 행위의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았다면, 그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관련 규정을 모르고 단지 감정에 치우쳐 행진을 시작 한거라면, 혹은 주최측이 고의적으로 방관을 한 거라면
앞으로 더 이상 희망은 없다.
그런 사람들이 주도하는 촛불 문화제는, 곧 촛불 시위가 될꺼고, 공권력과 충돌하게 될거고, 참가자들은 연행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혓바닥을 차며 그들을 외면할거다. '저것들 또 저러네' 라는 일반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말이다. 기존의 시위대와 차이점이 없어진 촛불 집회의 목소리는 고유가, 부동산, 입시경쟁에 휘말려 사라질 것이며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5년을 꾹꾹 채우고 성공적으로 은퇴할꺼다. 그리고 다음엔 또 다른 대통령이 뒤를 있겠지.
* 참을성이 부족했다. 물은 100도씨가 되야 끓는다. 이제는 유명해진 그 만화에서, 전두환을 끌어내린건 죽창과 화염병이 아니었다. 100도씨라는건 시위대의, 혹은 특정 집단의 온도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모든 국민의 온도를 말한다. 대머리 대통령을 하야시킨건 모든 국민의 조용한 목소리였지 500명도 안되는 시위대의 과격한 외침이 아니었다. 왜, 어쩨서, 그들은 물이 끓는걸 기다리지 못한걸까. 당장 쇠고기 고시가 되는게 그렇게 급했나? 그래서, 다 익지도 않은 냄비 뚜껑을 열면 뭐라도 요리가 나올 줄 알았던 것일까? 왜 조금 더 여론이 모이고,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게 되었을때, 그때 시작하지 않았던 것일까? 안타까움이 남는다.
* 물은 100도씨가 되어야 끓는다. 물이 끓으면 자동으로 넘쳐 흐른다. 뚜껑을 열고,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물을 끓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조용히 불을 떼는 일이다.
25일, 국민은 다 끓지도 않은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이제 물이 끓으려면 예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도 기다리자. 불을 떼는걸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자. 기다리자. 펄펄 끓은 물이 냄비에서 넘쳐흘러 온 국토를 적실 때 까지.
ps. 기다리기 싫으면 가서 이명박 모가지라도 따오라우.
과연 이게 물타기일까.
일단 수업 끝나고 글좀 써보자.
제일 중요한건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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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촛불 문화제에 간건 5월 17일이었다. 그날 나는 학교내의 사회과학 학회에서 광우병 파동 관련 세미나를 맡아서 직접 발제를 했고 세미나가 끝난 후 후배들을 데리고 청계광장의 촛불 문화제에 갔었다. 난 그놈의 사회과학 학회에서 작년엔 부학회장씩이나 맡은 경력이 있지만, 난 사회주의가 최고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거리 집회나 민중의 힘 같은것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예쁜 선배의 꼬임에 넘어가서 학회에 가입한건 아니고, 철저하게 '빨갱이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사나'궁금해서 가입했던 곳이었다. 학회의 정체성에 대해선 다음에 기술하기로 하자.
* 학회를 하면서 나도 이래저래 많은 집회현장을 가봤고 참가도 했었지만, 난 이유야 어떻든 폭력집회를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그런면에서 소위 전경과 그 뒤에있는 정부를 극악무도한 민중의 적으로 규정하고 개인의 감정을 자극해서 공권력과 정면충돌을 하게 만드는 시위 주동자들을 경멸했었다. 그런 사람들은 뻑하면 518이니 프랑스 혁명이니 하며 민중이 무기를 들고 일어서야 세상이 굴러간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그건 집단 광기와 절대 악이 만나서 집단 광기가 보다 선하게 포장된 경우고, 요즘 같이 악이 불분명한 시대엔 되려 그나마 착하지만 멍청한 사람들을 잡아다죽일 가능성이 더 많다.
* 효순이 미선이를 위한 촛불시 위나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시 위엔 참가해보지 못했기에, 그날, 미친소 반대하는 촛불 집회가 나에겐 첫 촛불 집회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접한 촛불 집회의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뜨거웠고 조용했지만 힘이 있었다. 자유발언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정말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자유롭게 발언하고 내려가고 했었다. 내가 간 그날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의 아저씨가, 학생들이, 부모님이, 동생들이, 친구들이 올라와서 자유롭게 의견을 펼쳤고 대부분 따뜻한 격려와 우렁찬 함성으로 지지를 받았다. 아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처음으로 공개된날도 그날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절제를 할 줄 알았고, 무엇이 잘 못인지 알았으며, 누구를 탓해야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청와대로 달려가 대통령 멱살을 잡고 끌어내리는게 아니라,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국민의 뜻을 전달하자는 그런 분위기었던 걸로 기억한다.
* 나중에 들어보니 전경이 배치되어있었다고 했지만, 난 군중들 한가운데 섞여있어서 전경들이 어디있는지 알 수도 없었다. 누구도 촛불 문화제를 막지도 않았고, 누구도 소리지르지 않았으며, 누구도 다치지 않았었다. 9시인가 10시인가, 주최측으로 보이는 사내(이사람이 자유발언대를 진행했었다)가 어쩌고저쩌고 하다가 오늘은 그만 마치겠다고하자 군중들은 자연스레 쓰레기를 치우고 자리를 떴다. 월드컵 때 광화문에서 응원을하고 자연스레 헤어지는 것 처럼 말이다.
* 내가 그날 촛불 문화제에서 본건 희망이었다. 아버지들이, 어머니들이, 아이들이, 학생들이, 청년들이, 정말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가 모일 수 있는 문화제였고, 누구도 부담없이 한번 와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마음에 드는 구호를 외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아버지. 친구와 야자가 끝나고 달려온 고등학생. 레포트를 마치고 온 대학생. 업무를 마치고 온 회사원. 가게문을 닫고 나온 사장님. 그야말로 전국민이 모였었다. 이제 규모가 조금만 커지고, 적당한 선전만 더해진다면 전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기에 무리가 없는 그런 문화제가 될 수 있을것 같았다.
* 현대 한국 민중운동의 가장 큰 단점은 당최 시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게 조중동의 색깔론에 휘말려서 그렇든, 국민이 다리가 넷 달리고 왈왈거리며 짖어대는 포유동물의 후손이라서 그렇든지간에, 사회분위기는 이미 '시위, 집회, 운동' 같은 단어들로부터 등을 돌렸었다. 거기엔 여러가지 앞서말한 이유가 있겠지만, 집회 자체의 과격함도 어느정도 기여를 하고 있음을 무시할 순 없다.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의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서' 라고 하지만, 왜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화염병을 던지고 죽창으로 찌르고 보도블럭을 부숴야하는가? 난 참 궁금했다. 내가 아는 의견 전달의 방법은 '시각과 청각' 두가지 방법이며 구체적으론 '문자, 그림, 음성, 행동'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의사소통 방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배웠다. 그럼 기존의 집회에대해 일반적인 해석을 해보면 화염병을 던지는 이유는 '나는 불과 휘발유를 좋아합니다.' 라는 의견의 전달이고 죽창으로 찌르는 행위는 '나는 대나무공예의 문화재 지정을 찬성합니다'라는 의견의 표출인가? 보도블럭을 던지는 이유는 '매년 구청의 이월금을 낭비하기위한 보도블럭교체를 규탄한다'라는 의미의 상징적 표현이고?
* 촛불 문화제엔 그런 행위들이 없었다. 오직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고, 표현하고, 전달했다. 공감하고, 이해하고, 의논했으며, 대중에게 알렸다. 난 거기서 희망을 느꼈다. 촛불 문화제엔 국민의 순수한 의견이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문화제는 지극히 합법적이었다. 집시법(이라고 쓰고 집회금지법 이라고 읽는다)의 '일몰 이후 집회는 불법'이라는 규정을 피하기 위해 촛불 문화제는 집회가 아닌 문화제였고, 가두행진이나 시위가 아니면서도 '의견전달'이라는 목적은 훌륭히 수행했었다. 조금만 더 하면 전국민의 의견을 대표하는 문화제가 될 수도 있었다.
* 그러나 촛불 문화제는 변했다. 첫 시민이 청계천 광장에서 엉덩이를 들고 청와대를 향해 걸어나가는 순간, 누군가가 일어서 '청와대로 갑시다!' 라고 말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문화제가 아니다. 그건 우리가 두려워하는 시위였고, 집회였고, 데모였고, 운동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촛불 문화제는 그것이 가진 단 하나의 장점, 기존의 집회와는 다른 단 하나의 차이점을 잃어버렸다.
희망은 사라졌다.
더 이상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올 수 없었다. 아이가 다치면 안되니까. 대학에 가야 하는 고등학생들은, 이제 촛불 집회에 나오지 못한다. 경찰에 잡혀가면 안되니까. 내일 출근해야 하는 회사원들은 더 이상 촛불 집회에 참가 할 수 없게 되었다.
* 그 과정을 지켜보던 경찰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범법자가 된 참가자들을 해산시켰다. 촛불 문화제는 문화제이기에, 공권력을 동원해 해산 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일몰 이후의 행진, 가두시위, 촛불 집회는 엄연한 불법이다. 지금까지 이땅에서 일어난 수 많은 불법 시위들과 하등의 차이점이 없다. 당연히, 기존의 시위를 진압하는 방식으로, 그들은 진압되었다.
* 누군가는 말한다. 이번 시위는 다르다고. 이번엔 예순살 할머님이 나오셨고, 다섯살 짜리 아이가 나왔고, 중고등학생들이 나왔다고.
웃기지 마라.
FTA 반대 시위땐 여든살 드신 할아버지도 나오셨었다. 광우병 반대하러 나오신 예순살 할머님은 물 한방울 맞으면 안되고 FTA 반대하러 전라도에서 올라오신 여든살 할아버님은 당연히 곤봉에 두드려맞고 잡혀가도 되는거였나? 두분 다 똑같은 시위대고 똑같은 범법자들이다. 경찰을 그걸 진압한거다. 경찰의 존재목적에 맞는 일이다. 거기에 빌미를 제공한건, 먼저 행동을 시작한 시위대였다.
* 여기서 한가지 문제는, 과연 누가 맨 처음 가두행진을 주장했느냐이다. 촛불 문화제를 주체하고 있는 사람들(자유발언대에서 양복입고 사회를 보던 사람들)은 분명히 일몰 후에 집회가 범죄이며 만약 그렇게 될 경우 경찰이 그들을 진압하리라는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 그걸 알면서도 그들을 거리로 내몬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누구의 말 처럼 프락치들일까?
* 차라리 프락치에 의한 선동설을 믿고싶다. 만약 그게 시민의 자발적인 행동이었다면, 그리고 누구도 그 행위의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았다면, 그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관련 규정을 모르고 단지 감정에 치우쳐 행진을 시작 한거라면, 혹은 주최측이 고의적으로 방관을 한 거라면
앞으로 더 이상 희망은 없다.
그런 사람들이 주도하는 촛불 문화제는, 곧 촛불 시위가 될꺼고, 공권력과 충돌하게 될거고, 참가자들은 연행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혓바닥을 차며 그들을 외면할거다. '저것들 또 저러네' 라는 일반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말이다. 기존의 시위대와 차이점이 없어진 촛불 집회의 목소리는 고유가, 부동산, 입시경쟁에 휘말려 사라질 것이며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5년을 꾹꾹 채우고 성공적으로 은퇴할꺼다. 그리고 다음엔 또 다른 대통령이 뒤를 있겠지.
* 참을성이 부족했다. 물은 100도씨가 되야 끓는다. 이제는 유명해진 그 만화에서, 전두환을 끌어내린건 죽창과 화염병이 아니었다. 100도씨라는건 시위대의, 혹은 특정 집단의 온도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모든 국민의 온도를 말한다. 대머리 대통령을 하야시킨건 모든 국민의 조용한 목소리였지 500명도 안되는 시위대의 과격한 외침이 아니었다. 왜, 어쩨서, 그들은 물이 끓는걸 기다리지 못한걸까. 당장 쇠고기 고시가 되는게 그렇게 급했나? 그래서, 다 익지도 않은 냄비 뚜껑을 열면 뭐라도 요리가 나올 줄 알았던 것일까? 왜 조금 더 여론이 모이고,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게 되었을때, 그때 시작하지 않았던 것일까? 안타까움이 남는다.
* 물은 100도씨가 되어야 끓는다. 물이 끓으면 자동으로 넘쳐 흐른다. 뚜껑을 열고,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물을 끓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조용히 불을 떼는 일이다.
25일, 국민은 다 끓지도 않은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이제 물이 끓으려면 예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도 기다리자. 불을 떼는걸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자. 기다리자. 펄펄 끓은 물이 냄비에서 넘쳐흘러 온 국토를 적실 때 까지.
ps. 기다리기 싫으면 가서 이명박 모가지라도 따오라우.
at 2008/05/2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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