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택트

(영화 스포 있음)

사실 나는 테드 창의 소설을 좋아하진 않는다.

어떤 하나의 주제나 담론을 떠올리고 그걸 SF의 틀을 씌워서 읽을 만한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테드 창의 능력은 인정하고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어느 하나 가볍게 접근하지 않고 다루기로 한 주제에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꾸준한 노력과 글쓰기 습관에는 감탄을 한다.
하지만 작품의 중심이 되는 기발한 상상과 작품 내부의 내적 논리를 빼고나면 기승전결구조를 갖는 이야기로서의 테드창의 소설은 그렇게 매력적으로 읽히지가 않는다.

애초에 테드창이 단편만 쓰는건 그런 이유지 싶다. 등장인물이 살아숨쉬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게 아니라 교훈이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싶은거니까. 그래서인가 테드 창 단편집들을 모아보면 어른들을 위한 SF 동화같은 느낌이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같은 어려운 용어를 섞어서 멋을 낸.

이야기의 근본이 되는 기발한 상상이나 생각할만한 담론이라는것도 전세계에서 테드창 혼자 이야기 하고 생각해낸 주제들이 아닐 뿐더러,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장의 경우에도 대부분 작가 본인이 선택한 결론이 맞다고 전제하고 그 대전제에 대한 일체의 서술은 무대 밖으로 밀어내 버린다음 세상을 만들고 이야기를 서술하기 때문에 그걸 그대로 사실로 믿으면 곤란하다. 대표적으로 이번에 나온 영화 컨텍트의 원작인 '네 인생 이야기'에서 나온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것도 촘스키한테 탈탈 털린지가 언젠데...

근데 스타워즈 보고 '오오 제다이가 존재하는구나'라고는 안하지만 컨택트 보고는 '오오 언어가 사고를 결정하는구나' 할꺼잖아...

물론 뭐 일반인들 상대로 여러 재미있는 화두를 던지는거야 참 좋은 일이고 그것도 문학의 용도중 하나니까 잘못 됐다는건 아닌데, 여튼 내 스타일은 아니다. 테드 창 소설들은 다 짧으니까 그냥 한번 쓱 읽어보고 뭐 그걸 이렇게 저렇게 분석할 시간에 그냥 관련 책이나 몇권 읽어보는게 낫지.  

그런 50 페이지 안되는 단편을 가지고 2시간짜리로 늘려놓은 드니 빌뇌브도 참 이런저런 고생을 많이 했다 싶다. 있지도 않은 갈등 구조를 만들어 내느라 중국, 러시아, 수단, 파키스탄을 비이성적인 전쟁광 나라로 묘사해놓고 은근슬쩍 백인들 나라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쪽에다가 살짝 걸쳐 놓는거야 뭐 헐리웃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쳐주자(물론 미국 내부에도 또라이가 없다고는 안한다). 근데 그 우주적 차원의 갈등을 주인공 중심의 헐리웃 히어로물 처럼 해결하느라 샹장군 마누라 유언을 끄집어와서 그덕에 수많은 내적/외적 구멍들을 뚫어버리는 참사에선 으... 그래 뭐 영화는 팔려야지. 투자자들이 단두대 들고 대기중일텐데. 팔아야지. 

대신 그런 갈등과 위기를 넣으면서 국가간 장벽을 넘고 손에 손잡아 위아더월드 세계관을 추구하려고 했던 고민은 보인다만 아니 그 위기 자체가 감독이 억지로 만들어낸거잖아 ㅠㅠ 그 이후에 뭐 아름다운 세계라도 구현이 되었다면 몰라도...

심지어 드감독의 장점중 하나인 예쁜 화면도 이번에는 어쩨 영 힘이 빠졌다. 시카리오에선 현실세계의 멕시코를 보여주는데도 시각적으로 헉 하는 감동이 있었는데, 어쩨 이번엔 SF의 로망인 거대 우주선이 나오는데도 헉 하는 장면이 없었다. 단순한 구조를 가진 거대 우주선의 방대함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것 같다. 도시가 아니라 들판 위에 비교할만한 물체가 없이 둥둥 떠있어서 크기와 웅장함이 와닿지 않은걸까.

뿌아아아아앙 하면서 심장을 긁어대는 요한 요한슨의 배경음악은 이제 거의 감독의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는거 같은데, 미지의 환경을 접하면서 나오는 긴장감을 묘사하기에는 좋지만 너무 자주 써먹으면 약빨이 떨어지지 싶다. 시카리오랑 다른게 있긴 한가.

테드창의 장점 중 하나인 성실한 공부능력을 십분 발휘해서 작가가 소설 내적으로 쌓아둔 외계인 언어체계에대한 상세한 설명이나 그걸 깨닫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 후에 주인공이 얻게되는 숙명론적 운명관에 대한 고찰과 그 설명을 위해 나온 페르마의 원리를 영화에서 덜어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거 다 넣으면 설명충이 강의하는 세시간짜리 다큐멘터리가 됐겄지.

그래도 뭐, 테드 창 식의 SF도 이번 기회에 좀 돈 되게 팔린다는걸 헐리웃이 알아차리면 맨날 우주에서 뿅뿅 쏴대는 스타워즈물만 나오는게 아니라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마구 던져대서 돈내고 영화보러 갔다가 머리 싸매고 돌아오는 몇백억짜리 지적 촉매재가 늘어나는 뭐 그런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에서 제일 웃긴 장면은

마지막에 Arrival 하고 영문 명이 올라가는데 그 밑에 자막으로 '컨택트'하고 뜨는거였다.

뭔 짓거리냐.


잡담

극장에서 뭐가 자꾸 번쩍 번쩍 하길래 21세기 IT혁명이 시작되고 17년이나 더 지난 정유년 새해에 어떤 시대에 뒤쳐져진 스마트 원시인 같은 사람이 상영중에 스마트폰을 자꾸 보는건가 했는데, 스마트폰이 아니라 스마트 와치였다.

야,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그 쪼그마한 스마트워치가 액정이 얼마나 선명한지 뒷자리에 있는 나도 지금이 몇시인지 눈에 따박 따박 잘 들어오더라. 완전 아몰레드 블링블링 라이트닝 라이크 져스트 선샤인 인정

영화가 지루하면 디비져 잠이나 주무시지 왜 자꾸 스마트워치로 시간을 확인하는건지 모르겠다. 아니면 뭐 카톡 오고 메시지 오고 그러면 진동으로는 부족해서 그 작은 시계가 빛이 있으라! 하면서 번쩍 번쩍 하는건가. 하나님 에디션인가.

보통 이런건 웃고 넘어가지만 혹시 내 주변에도 스맛트-와치를 처음 차고 쭐래쭐래 극장에 갔다가 옆사람 안구에 눈뽕 잔뜩 하면서도 못 알아차리고 옆사람이 자꾸 날 째려보면 '오호 보는 눈은 있어가지구 이거 갤럭시 기이어야, 2라구 후후' 하고 으쓱 하는 스마트 원시인들이 생길까봐 두려워서 올려둡니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